1925년 3월
시작
성결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 지 18년
본 교단이 해외선교를 시작한 것은 성결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 지 18년이 되는 1925년 3월이었다. 그 당시 장로교회와 감리교회는 우리보다 먼저 1909년과 1912년에 만주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선교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을 무렵, 본 교단도 만주에 선교하기 시작하였고 그 대상은 주로 정치적, 경제적인 사정으로 국외에 이주해 살고 있었던 교포들이었다.
만주
최초해외선교
교포 30여명과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다가
본 교단이 최초로 해외에 선교한 곳은 만주였다. 만주 용정으로 이사 간 박기래, 박장환, 한치국 등이 용정에 살고 있는 교포 30여명과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다가 교역자의 필요를 절감하고 교역자 파송을 요청하였다. 이 같은 요청에 한국 동양선교회 이사회는 지원을 결의하고 1925년 3월에 최초의 선교사인 이원근 전도사를 파송하여 용정교회를 설립하였다. 그 후 용정교회는 부흥하여 천보산에 지교회를 설립하고 만주선교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선교의 열기는 계속되었다. ‘경성성서학원’을 졸업한 조승각, 황성택, 박문익, 김인석, 김선학 등이 부흥운동과 교회설립에 힘을 써 동만주 지역에서 할빈교회, 명월구교회, 목단강교회, 조양천교회, 도문교회, 연길교회 등을 또한 남만주 지역에는 봉천교회, 무순교회, 안동교회, 북능교회, 포하교회 등의 교회를 8‧15 광복 전까지 계속하여 설립하였다. 그러나 조국의 광복과 함께 중국이 공산화됨으로 많은 교역자들이 만주를 떠나게 되어 1925년에 시작되어 1945년 광복 때까지 약 20년 동안 많은 열매를 거두며 활발히 전개되던 만주선교가 중단되었다.
일본
두번째선교
윤낙영 목사가 동경교회를 설립
성결교회가 두 번째로 선교한 곳은 일본이다. 1927년 3월 동경성서학원을 졸업한 윤낙영 목사가 동경교회를 설립하였다. 이어 1929년에는 박현명 목사가 참여함으로 활기를 띄게 되었다. 윤낙영 목사는 풍교교회와 3개의 기도처를 개설했으며, 1930년에는 대판교회와 명고옥교회를 개척하였다. 최익수 목사는 태평양전쟁의 와중에도 1937년 12월에 광도교회를 개척하였다. 이처럼 성장하던 재일 한인교회는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마침내 1943년 4월 7일, 한국 본토에 있던 성결교회가 일본정부로부터 해산명령을 받음으로 일본에 있던 성결교회도 함께 해산 당하는 쓰라린 아픔을 겪게 되었다. 19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대판교회, 광도교회, 동경신숙교회가 재건되었다.
중국
한족선교
이헌영씨를 파송하여 상해교회를 개척
본 교단의 중국 한족선교는 1933년에 경성성서학원에 재학 중이던 이헌영씨를 파송하여 상해교회를 개척한 것이 처음이다. 그 당시 신자는 약 100여명에 이르렀으나 만주사변, 중일전쟁의 와중에서 일제의 탄압으로 이헌영씨는 1938년 1년 만에 귀국하고 상해교회는 해산되고 말았다. 1941년 본 교단은 이헌영 씨를 상해 선교사로 재파송 하고자 하였으나 일본당국이 여권을 내주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6.25동란 이후
도약
여러 나라로 이민
6․25동란 이후 60년대 초까지 여러 모양으로 한국인들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볼리비아, 캐나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여러 나라로 이민하게 되었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1965년 10월에 브라질 상파울로에, 1970년에는 미국에, 1976년에는 캐나다 토론토에 성결교회가 설립되었다. 이에 부응하여 1970년 제25회 총회에서는 일본 지방회를 설립하였고, 1973년 제28회 총회에서는 미주 지방회를 인준하여 본 교단의 해외선교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70주면 맞이하여
해외선교위원회조직
해외선교의 면모를 갖춤
본 교단은 1977년 교단창립 70주년을 맞이하여 “해외선교위원회”를 조직하였다. 1977년 5월 제32회 총회의 결의에 이어 다음해 4월 17일 해외선교위원회가 조직되어 해외선교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해외선교위원회 운영규정 전문은 해외선교위원회의 조직에 대한 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1977년에 창립 70주년을 맞이하였다. 이에 우리는 선교 70주년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에 먼저 감사한다. 초대 창립자들의 정신과 전통을 계승하여 선배의 행적을 본 받아 안으로는 교단의 내실을 기하고 밖으로는 국외에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업의 주역이 되어야 할 시기에 이른 줄 믿으며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줄 확신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감당하기 위하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32회 총회가 교단 70주년을 맞아 본 교단의 선교적 사명에 입각하여 동남아와 나아가서는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할 사명을 절감하여 이에 선교사를 보내도록 한 결의를 따라 이 운영규정을 제정한다.”
1988년
선교사훈련원개원
인터넷을 활용한 종합 네트워크 구성과 선교정보공유
해외선교위원회 창립 후 1981년 박희성, 김명순 선교사 파송(태국)을 시작으로 선교사 파송이 이어졌고 1988년에는 선교사훈련원이 개원되었다. 또한 1991년 8월에는 제1회 세계선교대회를 개최하였으며 이듬해인 1992년부터 1993년에 거쳐 미주성결교회, OMS(동양선교회), 재일기독교회와 선교협정을 체결하였다. 1995년 필리핀, 네팔, 러시아의 선교지 총회 조직을 시작으로 1996년에는 카메룬과 케냐, 1997년에는 멕시코 선교지 총회가 조직되었다. 해외선교위원회는 21세기를 준비하며 미전도종족입양운동을 통한 세계복음화 지향, 평신도(전문인) 사역자의 집중육성을 통한 직접선교 지원,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비정부공익법인)를 통한 회교국가 및 사회주의국가에 선교거점 마련, 인터넷을 활용한 종합 네트워크 구성과 선교정보공유를 지향하고 있다.
1998년
해외선교운영규정
성결의 빛 발간 및 선교적 교류
해외선교위원회는 1998년 해외선교운영규정을 제정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선교의 체계화와 내실화를 기하고 있고, 선교본부의 정책과 선교사 훈련 상황 및 선교지 소식을 담은 ‘성결의 빛’을 발간하여 선교본부, 선교사, 후원자(교회)와의 연대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 2000년에는 선교사훈련원을 서울 가락동에서 경기도 광주 곤지암으로, 2006년에는 인천 불로동으로 이전하고 안식관을 개원하면서 선교사와 훈련생의 거주 여건과 훈련의 질적 성숙을 도모하였다. 또한 2002년 예수교대한성결교회와 함께 세계선교대회를 서울 잠실에서 개최하여 교단 내 선교영성을 고취시켰고, 미주선교센터를 창립하여 선교 교류를 확대하고, 지속해오던 아태연맹을 발전시킨 세계성결연맹을 통해 미주, 일본, 대만 성결교단 및 OMS와의 선교적 교류를 주도적으로 강화시키고 있다.
SEND 2028
비전선포
성결의 빛 발간 및 선교적 교류
해외선교위원회는 기존 선교정책을 계승 발전시켜 창립 50주년을 맞는 2028년까지 1천 명의 정식 선교사 파송, 1백 개 미전도종족 전도, 1천 5백 개의 후원교회 연결, 1백억 원의 선교기금 마련을 목표로 하는 'SEND 2028' 비전을 선포하고, 그 실행을 통해 열방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주님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하고 있다.